제대혈이라는 걸 그저 그냥 지나치는 단어 정도로만 생각했어요.
그러다 친구 아버지가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으셨고, 그때 헌혈증부터 온갖 치료 방법까지 발 벗고 나서며 정말 힘들어했던 기억이 있어요. 그래서 친구도 출산 시 제대혈을 보관했더라고요. 그래도 그때는 크게 와닿지 않았던 것 같아요.
그러던 중 저희 결혼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시어머니께서 급성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으셨고, 저희 가족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. 하지만 친구 아버지도 회복을 잘하셨고, 찾아보니 좋은 소식들도 많아서 잘 치료받으면 빠른 회복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어요.
몇 달 동안 통영에서 서울로 왔다 갔다 하며 제일 유명한 교수님께 진료도 받고 입원도 하셨지만, 날들은 점점 길어졌어요. 그런 날들이 저희 가족들에게는 불안함만 더 키워갔죠.
신약과 항암 치료, 결국 남편의 조혈모세포 이식까지 하게 되었어요. 제일 적합한 사람이 저희 남편이었지만 완전한 일치는 아니었죠. 그래도 결혼한 지 채 몇 개월도 안 된 터라 저도 많이 걱정이 되었어요. 다행히도 남편이 이식한 후 어머님은 좋아지셨고, 우리도 함께 기뻐했어요. 부작용처럼 나타날 수 있는 반응들도 잘 견뎌내셨어요.
이제 우리 가족 모두 좋아질 날들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죠. 그러던 중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어 다시 병원에 입원하게 되셨어요. 누구보다 어머님이 힘들게 견뎌오신 시간들이 다시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. 며칠이 지나고 어려운 몸 상태였지만, 저희 가족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항암 치료를 한 번 더 하자고 했고 결국 진행했지만, 어머님은 하늘의 천사가 되셨어요.
그래서 제대혈이라도 있었다면, 병원에서 방안을 좀 더 자세히 안내해 주었더라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던 것 같아요.
어머님이 돌아가신 지 1년 후, 저희에게 이 세상에 태어날 축복이 찾아왔고 베이비페어에 가서 제대혈 코너에서 상담을 받았어요. 저희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셨어요. 그래서 세 곳 중 고민 끝에 견학도 갈 수 있고, 가족과 우리 아기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멀티백이 있는 셀트리에 가입하게 되었고, 이 또한 제가 건강하게 몸 관리를 해서 통과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랍니다.
제일 좋은 건 역시 건강하게 삶을 살아가는 것이겠죠.





